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대구에서 뭐 먹고 사니? 음식이 맛이 없잖아?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1. 27. 14:33

벌써 다음 주면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입니다. 오늘은 겨울을 더욱 더 재촉하는 마지막 가을비가 내리는군요. 아침 신문에는 연일 내년이 더 힘들어 질 거라는 예측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더욱 추워집니다.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 35년 중 28년을 대구에서 살았으니, 대구 토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구는 저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와 대구에 대한 얘기 중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뭐 먹고 사니? 음식이 맛이 없잖아?”

“대구에도 맛있는데 많은데....내가 좋아하는 ◯◯식당도 있고,,,”

“대구 맛있는 식당 있다는거 너한테 처음 들었다‘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대략 서울에 사는 7년 동안 저런 대화를 100번은 넘게 한 것 같습니다. 왜 대구음식이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맛이 없다는 인식을 주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왜 다른 지역 분들이 대구 음식이 맛이 없다는 인식을 가졌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결혼 전날 친구들이 파티를 벌인 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모처럼 대구를 방문한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가슴이 떨립니다. 가장 순수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라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또한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결혼하는 친구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밤이 새는지 모르고 결혼 전날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친구가 결혼하는 날이었습니다.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밥을 먹고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고민입니다.

  결혼식장을 가는데 밥을 먹고 간다? 다른 지역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대구에 있는 예식장의 음식 맛은 맛이 없기로 유명합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밥을 한 그릇 먹고 집을 나섭니다.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전국에 각지에서 결혼식에 참가한 듯합니다. 아름다운 결혼식을 마치고 드디어 뷔페음식점으로 향합니다. 사진까지 찍고 갔으니, 오후 3시쯤 이었습니다. 나름 대구에서 오래되고 전통이 있는 예식장이라 약간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 예식장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나 음식을 보는 순간 모든 기대는 접습니다. 한마디로 가관입니다.

  “지나치게 단촐 한 종류, 얼어버린 회 초밥, 오래되어 보이는 튀김, 즉석요리코너는 개점휴업, 덩어리 진 잡채, 1000원 짜리 보다 맛없는 김밥, 너덜 해 보이는 생선 회” 등 맛없는 것으로 가득한 종합세트 전시장입니다. 심지어 밥도 군대에서는 먹는 맛입니다.

 음식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합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다들 빈 접시만 들고 있습니다. 결국 아주 조금씩만 음식을 담아옵니다. 그것도 먹는 둥 마는 둥입니다. 친구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 이걸 먹으라는 건가? 해도해도 너무 하네”

“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자리인데, 이러니까 대구 음식이 맛없다는 소리를 듣지”

“ 잔치집인데, 대충먹자”

  아주 조금씩 먹는 흉내들을 냅니다. 먹성 좋은 친구는 배고프다고 한 접시를 어렵게 비웁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는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느껴봅니다. 기분 좋게 결혼식에 참가하고 일순간 분위기가 냉냉 해집니다. 다행히 저는 밥을 먹고 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놓습니다. 밥을 먹지 않았던 친구들의 표정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국수라도 한 그릇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국수코너에 갔습니다. 그런데 국수코너에 국수는 있는데, 양념이 없습니다. 양념을 채워놓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항의해도 멀뚱히 쳐다만 봅니다.

 할 수 없이 국수에다 국물만 담아서 자리에 가져왔습니다. 국수를 풀어서 입안에 넣었는데, 또 한번 놀라고 맙니다. 방심할 틈이 없습니다. 육수가 찬물입니다. 서서히 열 받기 시작합니다.

 뷔페음식은 그나마 종류도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직원들을 찾아보지만 음식이 다 떨어졌다는 말 밖에 하지 않습니다. 아주 불친절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다고 남의 잔치 집에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겨우 참고 콜라만 홀짝 마시고 자리를 일어납니다. 다른 친구들은 전 날 먹은 술에 대한 해장도 하지 못했습니다. 벌레 씹은 표정들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입구에 마련해 놓은 수정과를 입가심으로 먹습니다. 설탕냄새가 확 올라옵니다. 수정과가 아닙니다. 거의 설탕물에 가깝습니다. 이쯤 되면 공포에 가깝습니다. 즐거워야 할 식사자리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다들 약간씩 지친 표정입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한 채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예전부터 결혼식은 가장 큰 잔치행사였습니다. 또한 결혼식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먼 길을 달려와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모두 다 풍요롭게 보내야 하는 날이지요.

 이런 이유로 결혼식은 그 도시의 인상을 규정지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결혼식에서 받은 인상은 평생을 가지고 갈지도 모릅니다. 대구의 음식이 맛없다는 인식이 이런 무성의한 결혼식 음식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무성의 뷔폐음식 보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먹었던 정갈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부터 대구의 결혼식 음식문화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답답합니다.

  끝으로 대구시장님께 한마디 드립니다. 시장님 음식이 맛없다는 인식이 있는 곳에 누가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대구시청 차원에서 예식장의 무성의 음식 문화를 혁신할 방법을 찾아보시는게 어떨지 감히 충언 드립니다.

  전진한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