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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는 우리의 삶이다] 밀실회의가 낳은 ‘맹탕 징계’·‘쪽지 예산’… 그들만의 성역

opengirok 2019. 4. 15. 15:47

국회 비공개회의 실태 / 윤리특위 회의, 법으로 ‘비공개’ 못박아 / 의원들, 국민에 공개 논의한 적도 없어 / “비공개를 당연한 것처럼 여겨” 지적 / 시민단체 ‘알권리 침해’ 이유 헌소 제기 / “기밀 담긴 정보위 회의 비공개 불가피 / 공개 땐 판에 박힌 말할 것”… 신중론도 / 공개되는 회의록 불게재 조치도 논란 / ‘비밀’ 요할 땐 협의 후 일부 삭제 가능 / “박정희는 독재자” 비판 ‘-·-·-’ 표시돼


세계일보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동기획 "알권리는 우리의 삶이다"

 

⑬ 밀실회의가 낳은 ‘맹탕 징계’·‘쪽지 예산’… 그들만의 성역 



‘공개되지 않으면 부패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기밀도 국민에 공개돼야 할까. 선진국들은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공개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법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부정부패가 ‘밀실’에서 움튼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대통령의 은밀한 기록일지라도 30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공개토록 한 특별법을 2007년 제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민 알권리 확대와 함께 국가기관 구석구석 이런 ‘장치’들이 마련됐지만 유독 국회만은 예외다. 지난 70여년 동안 국회에서 1400회 넘는 비공개회의가 있었으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국민에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7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근거를 만들어야 할 의원 입장에선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앞으로도 공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가히 ‘성역(聖域)’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은 되고 국민은 안 된다?


취재팀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회 비공개회의록 현황’에 따르면 관련 자료가 소실된 제헌국회를 제외한 2대 국회부터 지난해 말 20대 국회까지 모두 1462건의 비공개회의가 열렸다. 그중 정보위원회에서 진행된 회의(14∼20대)가 408건으로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국회 회의는 헌법에 따라 공개가 기본이다. 다만 ‘국가안전보장’ 등 국회법이 정한 비공개 단서 조항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될 수 있다. 정보위 회의와 의원 징계를 위한 윤리특별위원회 회의는 국회법에 아예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못 박혀 있다.

물론 일부 회의는 비공개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도 공개할 절차나 근거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그간 공개된 적은 물론 공개를 논의한 적도 없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비공개회의록은 단 한 번도 국민에 공개된 적이 없다”며 “오직 의원들만 국회의장 등의 허가와 공표 금지를 전제로 열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보위가 따로 보관 중인 정보위 회의록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국민들은 ‘밀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길이 없는 구조인 셈이다. 비공개회의에 대한 의혹 어린 시선은 끊이지 않는다. 예컨대 ‘맹탕 징계’, ‘제 식구 봐주기’ 지적이 꾸준한 윤리특위의 경우 2000년 이후 의원들에게 내린 출석정지 이상 중징계는 단 3건뿐이다. 그나마 20대 국회 들어선 전무한 실정이다. 이른바 ‘쪽지 예산’이 판을 치는 것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 소위원회 회의가 비공개이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조민지 사무국장은 “국회가 다루는 광범위한 정보를 감안할 때 비공개회의가 열릴 수 있다”면서도 “의원들이 비공개를 당연한 것처럼 여겨 국민에 공개하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점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역사를 입맛대로 남겨선 안 돼”


공개되는 회의록도 ‘불게재’ 조치가 국민 알권리를 가로막는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이나 위원장은 ‘비밀’을 요할 때 발언자 등과 협의해 회의록 일부를 지울 수 있다. 취재팀이 입수한 ‘불게재 관련 현황’을 보면 6∼20대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 회의록 내 불게재 건수는 462건에 달했다. 불게재로 결정되면 국회기록보존소에 이관되는 회의록을 제외한 나머지 회의록에서 해당 발언이 사라진다. 보존소 회의록은 현직 의원만 볼 수 있다.

흔히 ‘속기록 삭제’로도 불리는 불게재는 국회의원들이 회의 과정에서 실언이나 막말, 민감한 발언을 한 경우 의장에 요청하는 일이 많다. 예컨대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른바 ‘김학의 성범죄’와 관련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대표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한국당 측은 “제1야당 당대표 이름을 여기에 꼭 거명할 필요가 있느냐”며 속기록 삭제를 요구했다.




불게재 역시 비공개회의록과 마찬가지로 공개 절차가 없다. 의원들 ‘입맛대로’ 역사가 남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이를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른바 ‘김옥선 파동’이 대표적이다. 1975년 10월8일 김옥선 신민당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딕테이터(독재자) 박’이라고 지칭하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정작 회의록에는 해당 발언이 남아 있지 않다. 국회의장이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지웠기 때문이다. 당시 한 페이지 남짓 속기록에 ‘-·-·-’ 표시가 아홉 군데 나온다.

김 전 의원은 “10년 전부터 (불게재된 부분을) 공개하고 국회 역사에 남겨달라고 국회의장에 요청하고 있으나 감감무소식”이라며 “독재에 맞선 역사적 기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예회복도 중요하지만 국민 알권리와 국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헌재 간 ‘비공개회의’… “신중해야” 시각도


이와 관련해 국회기록보존소 등에서 간간이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의원님들께서 판단하실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정보위 회의를 비공개로 정한 국회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의 ‘원칙적 공개·예외적 비공개’ 형식, 국회 의사공개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민변 조지훈 변호사는 “국정원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정보위에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 외부에선 알 길이 없다”며 “국민 알권리를 침해하는 국회법의 위헌성을 따져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측에서는 2017년 6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해 계류 중이다. 조 의원은 비공개회의록과 불게재와 관련해 “일반 대중에 공개하는 것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며 “생산 후 30년이 경과하면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해 국민 알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국회 통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옥선(85) 전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국회에서부터 역사를 감추고 지워서야 되겠느냐”며 “40년이나 지난 지금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겠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불렀다가 의원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런 기록이 사라진다면 앞으로 누가 올곧은 소리를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창수 기자


학계에서는 미국과 영국 등의 비공개회의에 대한 공개 규정 등을 들어 ‘제도의 부재’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이승일 강릉원주대 교수(사학)는 “대통령기록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개되는데 국회 비공개회의록은 유일하게 공개 절차 자체가 없다”며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들의 대표가 국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공개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긴 하다. 국가안보나 실무 차원에서 비공개가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2일 정보위 회의 공개와 관련해 “공개와 비공개 모두 실익이 있다”며 “공개로 하면 (기관들) 답변이 10분의 1밖에 안 나온다. 비공개로 하면 기관들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만 공개로 하면 판에 박힌 ‘오리발 답변’ 외엔 안 나온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정보위 야당 간사였던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도 “나는 비공개회의록이 문제라고 생각해 2004년 이를 공개하는 근거를 마련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면서도 “(직접 정보위를 해보니) 국가안보 측면에서 이런 비공개회의들에 관한 공개 근거를 법적으로 못 박는 것에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팀장)·김민순·이창수 기자, 최형창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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