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이화동 칼럼

[공개사유] 무투표당선이 만드는 유권자 알권리 침해

opengirok 2022. 6. 14. 13:13

선거 며칠 전 집으로 온 후보들의 공보물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지방선거에서는 총 7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되다 보니 공보물만 해도 두둑하다. 기초의원부터 단체장까지 하나씩 살펴보려고 정리를 하는데 봉투에 기초의원 후보의 공보물만 쏙 빠졌다. 그러고 보니 선거 벽보에도 구의원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우리 동네가 구의원 무투표당선 선거구란다. 우리 동네는 2인선거구라 두 명의 구의원을 뽑게 되는데 출마한 사람이 단 두 명 뿐이라 선거도 하지 않고 그냥 당선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지역 주민을 대의하고 우리의 일상에 밀접한 일들을 4년 동안 해나갈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권자로서 나와 지역을 대변할 정치인이 적어도 어떤 공약을 들고 온 사람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무투표당선 의원들의 공약을 볼 수 없으니 난개발에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이 우리 동네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별 수가 없다. 공직선거법 275조에 따라 무투표 당선자는 벽보와 공보물을 포함해 일체의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8회 지방선거는 역대급의 무투표당선 선거이다. 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 중에 투표도 없이 당선되는 후보가 무려 507명에 달한다. 6회 지방선거의 무투표 당선자가 195명, 7회 지방선거의 무투표 당선자가 85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비율로 보더라도 이번 선거 전체 당선자의 12%가 무투표 당선이다. 지역별로 보면 전라북도가 253명 중 27%인 69명으로 무투표당선률이 가장 높다. 그 뒤는 서울이 잇는데, 당선자 565명 중 21%에 달하는 121명이 무투표 당선자다.

선거기간 중 중앙선관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2022 지방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된 대구시 달서구청장과 광주시 광산구청장의 정보. 공약 등 공보물 다운로드가 비활성화 되어있다.


선거 종류로 보면 당선자 수가 가장 많은 기초의원에 해당하는 구/시/군의원이 역시 가장 많다. 지역후보와 비례후보를 합쳐 총 393명이 무투표 당선자다. 광역의원인 시/도의원은 108명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단체장 선거에서도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대구/경북, 광주/전남에서 각각 3명씩 총 6명의 기초단체장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5회, 6회 지방선거에 이은 세 번째 무투표 당선인 것이다.

이 말은 해당 지역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의 군수와 구청장 될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고, 어떤 공약을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는 얘기다. 무투표 당선자다 보니 공보물도, 벽보도, 현수막도, 선거유세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출된 단체장이 궁금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후보들에 대한 기본정보를 살펴봤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확인한 결과 6명의 무투표 당선자 중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은 세 명, 최근 5년간 세금 체납을 한 당선자는 한 명이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후보들의 상세한 공약은 살펴볼 수가 없다.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니 공보물 제작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하지 않았으니, 제출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무투표 당선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공직선거법 275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에서 후보자 등록마감 후 후보자가 사퇴·사망하거나 등록이 무효로 된 경우 해당 선거구의 후보자가 그 선거구에서 선거할 정수범위를 넘지 아니하게 되어 투표를 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그 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이 법에 의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해당 지방의회 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의 선거운동은 이를 중지”해야 한다.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고, 유권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조항 때문에 수많은 유권자들은 후보에 대해 알권리가 침해되고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만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를 검증하고, 투표를 하는 것은 매우 직접적인 정치 행위이다. 이러한 정치 행위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어진다. 내가 뽑은 사람은 최소한 이름이나 어느 정당인지 정도는 기억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검증과 투표라는 것이 불가능한 현행의 무투표당선 상황에서 시민들이 지역과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8회 지방선거 투표참여율은 50.9%로 역대 지방선거 중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선거에서 투표참여가 높아질 수 있을까. 정치 무관심과 정치 냉담이 변화할 수 있을까. 일당 지배와 양당 나눠 먹기로 점철된 지역 정치의 민낯은 이번 선거에서 507명의 무투표당선으로 드러났다. 아무도 모르게 무혈 입성한 구청장과 군수, 의원을 포함한 507명은 누가 기억하고, 관심을 가질까. 관심이 없는데 감시는 가능할까.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누가 통제할 수 있을까.

무투표당선에 대한 위헌적 요소들 때문에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찬반투표제 도입이나 후보자 재공모 제도, 기초의원의 경우 2명이 아닌 3~5인이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비례대표제 확대 등이 대안으로 이야기된다. 여기에 요구를 하나 더 추가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후보자에 대한 정보공개,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 알아야 관심도 생기니까.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정진임

*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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