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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공공기록물 ‘멋대로 폐기’ 쉬워지나

opengirok 2010. 1. 28. 09:47

정부, 외부심의 없애고 폐기절차 간소화 추진
학계 “행정 편의주의로 중요문서 소실 우려”


정부가 각 부처에서 생산한 각종 기록물의 폐기 절차 간소화 방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투명·책임 행정을 위해 1999년 도입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뒤엎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가 27일 확보한 ‘행정내부규제 개선회의’ 자료를 보면, 국무총리실은 지난달 22일 문화재청·국방부·환경부 등 중앙부처 관계자들과 회의를 열어 의무 보존기간이 5년 이하인 정부 기록물을 폐기할 때 외부 전문가의 심의를 생략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기록물은 중요도에 따라 보존기간이 1년, 3년, 5년, 10년, 30년, 준영구, 영구 등 7단계로 나뉜다. 또 모든 기록물은 폐기할 때 △생산부서 의견 조회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기록관리사 등)의 폐기 여부 심사 △‘기록물평가심의회’(외부 전문가 2명 포함)의 심의 등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이 가운데 세번째 단계를 없애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27일에도 관계 부처들과 회의를 열어 이런 방안을 논의했다. 총리실 쪽은 “5년 이하 기록물이 전체 기록물의 6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모든 기록물에 대해 심의회를 거쳐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심의의 부실화, 폐기 업무의 과중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정부가 행정 편의를 위해 ‘기록문화’를 훼손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전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는 “기록은 문화·역사적 가치도 갖고 있는 것”이라며 “기록물 폐기 절차를 간소화하면 중요한 문서가 소실될 뿐 아니라, 공무원들의 책임 있는 행정이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기록물 폐기 절차 간소화 방안을 실행에 옮기려면 관련법 개정이 필요해, 향후 입법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정부는 또 기록물의 전문적 관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키우고 있다.

현재 시행령은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의 자격 요건으로 ‘석사 이상의 학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는 일반 공무원들이 일정 기간 교육을 받으면 이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태세다. 국회·청와대 등에서 기록연구사를 거친 조영삼 한신대 초빙교수(기록학)는 “현 정부는 ‘행정 편의’를 앞세워 기록 관련 행정을 1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폐기 절차 간소화 방안은) 검토 단계에 있는 사안”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