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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선 부서 직원이 “우리가 더 잘 안다” 멋대로 폐기

opengirok 2010. 10. 27. 11:28
ㆍ허술한 정부 기록물 관리… 심사·심의 안 거치고 주먹구구식
ㆍ“대면보고 많아서…” 기록물 생산도 허점

지난 4월 행정안전부의 기록물 관리실태 감사에서 전남 목포시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아닌 주민센터(동사무소) 직원에게 기록물 심사와 폐기를 맡겼다가 적발됐다. 당시 목포시는 “해당 직원은 기록물관리요원은 아니지만 석사 자격이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 3월 전남 강진군 역시 기록물관리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을 생략하고 문서를 없앴다가 행안부 감사에 적발됐다. 당시 군청의 각 부서는 문서관리를 담당하는 총무과에 문서 목록만 보냈고, 문서는 해당 부서가 자체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는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공공기관이 기록물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폐기 또는 보존한다면 투명한 행정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다.



기록물관리법은 보존기한이 다 된 기록물에 대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생산부서 의견을 조회한 뒤 문서를 심사하고, 담당 공무원과 관련 대학 교수,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기록물평가심의위원회가 심의해 폐기 또는 보류(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의위가 중요문서라고 판단하면 보존기한을 다시 책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록물 폐기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부산의 한 구청 기록물평가심의위는 ‘폐기를 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폐기 보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문서를 제작한 공무원들은 “우리가 더 잘 아는데 이건 폐기해도 된다”며 절차도 밟지 않고 서류를 없앴다. 당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여러 부서에서 수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대부분의 지자체에 기록물관리요원이 1명밖에 없으니 감시할 방법이 없어 알려지지 않은 폐기 사례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없는 지자체도 여전히 많다. 관련 법령이 개정돼 기초자치단체도 지난해 12월 말까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두도록 했지만, 행안부 감사 결과 강원 인제와 전남 목포·강진은 전문요원을 채용하지 않고 심의위도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록물 생산 관리도 기관마다 들쭉날쭉이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2010년도 기록물관리 생산현황’에 따르면 특임장관실은 지난해 단 15권의 기록물을 생산했다고 통보했다. 15권의 기록물 중 회의록은 한 권도 없었다. 특임장관실 관계자는 “대면보고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기간 농림수산식품부는 10만139건, 법무부는 9만7299건의 기록물을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신대 국사학과 조영삼 교수는 “기록물 생산현황은 문서에 대한 일종의 ‘출생(생산)증명서’로, 기록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기록물을 무단 폐기할 경우 처벌조항을 추가하고,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석·박사 학위 소지자로 채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제도

기록물 관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2000년 도입됐다. 정부는 요원 양성을 위해 전국 20여개 대학에 기록관리 석사과정을 개설하도록 지원했다.


정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