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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풍력발전단지, 환경평가 피한 비밀은 ‘인허가 쪼개기’

opengirok 2010. 1. 27. 10:05

[정보공개청구 세상을 바꾼다] ‘정보장막’ 걷어낸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
시행사, 영양군·산림청에 따로따로 산지전용 신청
허가받은 땅 합치면 37만㎡…환경영향평가 대상
농사 피해 주민들 공개된 자료로 무효확인 소


“올해 감자 농사는 망쳤습니다.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40%나 줄었어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맹동산 산자락. 농부 유준우(70)씨가 밭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주위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고도 600m의 빈터였다. 유씨는 밭 바로 위를 둘러싸고 있는 6대의 풍력발전기를 가리켰다. 유씨는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발전기 진동도 문제지만, 그림자 탓에 일조량이 줄고 밤새 켜두는 충돌방지용 점멸등 탓에 감자가 제대로 자라질 못한다”고 주장했다.

‘친환경 에너지’로 알려진 풍력발전 탓에 환경이 파괴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당국의 설립 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시민단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구체적인 내역을 확인하고 소송까지 제기해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영양의 풍력발전기 설치 공사는 지난 2008년 5월부터 맹동산 일대를 파헤치며 진행됐다. 발전기는 지난해 5월께 유씨의 밭 앞에도 놓였다. 맹동산은 민둥산이 돼갔다. 이 지역은 수달과 황조롱이, 노랑머리붓꽃 등 법정보호종이 많이 사는 우수 생태 지역이다. 하지만 공사 시행사인 영양풍력발전공사㈜가 진행한 사전환경성검토에는 이런 내용이 누락됐다.

지난해 7월 토사가 흘러내렸고, 산 아래 살던 주민 김종혁(42)씨 등은 흙탕물을 식수로 먹어야 했다. 영양군청은 주민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행사의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며 사업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이런 대규모 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산지전용면적이 20만㎡를 넘으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5월께 일부 언론이 관련 의혹을 제기했고, 실측 결과 20만㎡를 넘어섰음이 확인돼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허가 내역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승기(50) 한국녹색회 정책실장은 지난해 9월부터 지식경제부와 영양군 쪽에 잇따라 산지 전용 허가 면적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영양군은 “직접 산지전용허가를 내준 면적은 전체 풍력발전 41기 가운데 2기(1만4625㎡)뿐”이라고 답했다.
이번엔 산림청을 지목했다. 산림청을 상대로 풍력발전 38기와 발전기 사이의 연결도로를 위한 산지전용 허가 내역을 청구한 것이다. 산림청은 “도로용 산지전용 면적이 14만3617㎡, 18기에 대한 산지전용허가 면적이 7만9873㎡, 20기에 대한 산지전용 협의 면적이 13만3857㎡”라는 답을 보내왔다. 영양군과 산림청이 허가해준 산지전용면적은 결국 모두 합쳐 37만1972㎡였다. 나머지 1기는 농지를 전용한 곳에 세워졌다.

특히 영양군은 34기의 풍력발전단지 개발행위를 2008년 5~9월 네 번에 걸쳐 나눠서 허가해줬다는 사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됐다. 주민들은 영양풍력발전공사㈜가 환경영향평가 등의 법적 절차를 피하려고 ‘사업 쪼개기’ 신청을 했고, 영양군은 이를 눈감아 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에 무기가 됐다. 그동안 영양군 등의 ‘정보 은폐’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나, 영양·영덕군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이 자료를 들고 행정법원에 ‘영양풍력발전단지 개발사업 인가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이 청구는 <한겨레> 등의 ‘정보공개청구 캠페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영양군 관계자는 “이 사업 대상지가 국유림, 군유림으로 나뉘어 있어 산림청과 군이 따로 산지전용허가를 내줘 전체 규모가 20만㎡를 넘어섰다는 점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양/글·사진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